한밤중 서울 지하철 4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을 헤매던 90대 치매 노인이 역 직원의 신속한 대응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실종자 수색에 도움을 준 직원. 4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 근무하는 라광수 차장.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 10일 오후 11시 23분경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근무 중이던 라광수 차장은 CCTV 감시 근무 중 내복 차림의 노인이 8번 출구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 모습을 포착했다.
보호자가 보이지 않고, 한밤중에 부적절한 복장으로 역을 방문한 점을 이상하게 여긴 라 차장은 상황을 주시하며 노인이 지하 1층까지 내려올 때까지 계속 관찰했다.
이후 보호자가 없고, 도움이 필요한 상황으로 판단한 라 차장은 노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지만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이에 그는 함께 근무하는 직원에게 즉시 112에 신고하도록 요청한 뒤, 노인이 놀라지 않도록 7분간 대합실에서 곁을 지키며 역사 내 고객안전실로 이동할 수 있도록 설득했다.
라 차장은 “고령의 어르신을 무리하게 설득하면 돌발행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며 신중하게 접근했다.
결국 라 차장의 끈질긴 설득 끝에 노인은 고객안전실로 이동했고, 직원들은 노인의 손과 발을 주물러주고 따뜻한 두유를 건네며 보호조치를 했다.
이후 현장에 도착한 경찰이 신상정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노인이 소지하고 있던 ‘치매노인 인식표’를 발견했다. 이에 기재된 연락처를 통해 보호자와 연락이 닿았고, 노인은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라 차장이 안부 확인을 위해 보호자와 나눈 연락들(보호자 동의 얻어 게시) 서울교통공사 제공
라 차장은 “쌀쌀한 밤에 홀로 배회하는 노인을 보고 7~8년간 치매를 앓으셨던 어머니가 떠올라 두유라도 하나 더 챙겨드리고 싶었다”며 “늦지 않게 가족에게 돌려보낼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후 보호자로부터 “무사히 귀가해 푹 주무셨고, 주간보호센터에도 잘 다니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서울 지하철 내에서는 치매노인을 비롯해 실종 사례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공사가 운영하는 구간에서 실종된 치매노인 보호 조치 후 가족에게 인계된 사례는 총 13건이다.
공사는 실종자 조기 발견을 위해 ‘실종아동 등 조기발견 매뉴얼’을 마련해 각 역사에 배포하고 있으며, 실종자 발생 시 경찰 신고, 안내방송, 사내게시판 정보 공유, 관제센터 전파 등의 절차를 신속히 진행하고 있다.
마해근 서울교통공사 영업본부장은 “늦은 밤 시민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준 라 차장과 직원들에게 감사하다”며 “앞으로도 실종자 발생 시 빠른 대처를 통해 가족의 품으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하목형 기자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