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경유세 인상? 정부는 검토 안 한다지만…
  • 이명철 기자
  • 등록 2020-10-26 07:44:41

기사수정
  • 국가기후환경회의, 車연료 가격 조정안 정부에 권고 예정

자동차 운행 모습 (교통일보 자료사진)

시민단체와 여당에서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해 경유세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가운데 정부가 “전혀 검토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유를 연료로 쓰고 있는 화물차운송업계 및 경유차 운전자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26일 기획재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일각에서 중장기적으로 수송용 에너지세율을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현시점에서 경유세 인상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고 본다”며 “(경유세) 인상을 검토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정부 차원에서 경유세 인상을 추진할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경유세 인상은 지난해 봄에도 거론됐다가 ‘없던 일’이 됐는데 이번에는 예사롭지 않다는 분위기다.

 

경유세 인상은 미세먼지 저감 방안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세금 인상을 통해 경유 소비량을 떨어뜨려 미세먼지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 골자다.

 

경유차는 휘발유나 액화석유가스(LPG) 차량보다 미세먼지를 더 많이 배출하는 것으로 지목된다. 시민단체 에너지전환포럼의 조사에 따르면 경유차는 도로이동 오염원 중 미세먼지 배출량의 98% 이상을 차지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경유 사용 비중은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지난해 말 기준 수송용 연료 소비에서 경유가 차지한 비율은 45.7%로 휘발유(22.5%)의 두 배에 달했다.

 

이에 따라 에너지전환포럼은 경유세를 인상하면 미세먼지를 줄이고 세수도 늘릴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수송용 에너지 가격체계 및 유가보조금 제도개선 방안 연구’ 보고서를 마련, 최근 대통령 직속 범국가기구인 국가기후환경회의에 제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경유차에 부과하는 유류세가 휘발유의 120% 수준으로 인상될 경우 미세먼지(PM10)와 초미세먼지(PM2.5) 배출량은 2016년 대비 최대 7.4% 감소하고, 경유 세입은 2018년 대비 최대 10조2000억 원 늘어나게 된다. 사실상 경유세 인상에 무게를 둔 내용이다.

 

국가기후환경회의는 지난해 4월29일 공식 출범한 대통령 직속 범국가기구다.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이 위원장을 맡고 있다. 미세먼지 문제에 대한 범국가적 대책 마련을 위해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고, 마련한 대책을 정부에 제안한다.

 

국가기후환경회의는 24~25일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일반국민 500명이 참여하는 ‘2020년 국민정책참여단 종합 토론회’를 온택트 방식으로 열어, 국가기후환경회의의 8대 과제 중 수송부문 과제인 ▲자동차 연료가격 조정 ▲내연기관차에서 친환경차로의 전환 로드맵 마련 등에 대한 논의를 가졌다. 

 

하지만 자동차 연료 가격 조정 과제의 종합토론회 결론의 방향은 경유세 인상을 전제로 이미 어느 정도 정해진 것으로 보인다. 경유세 인상 시나리오만 반영돼 있어서다. 

 

휘발유와 경유의 상대가격(기존 100대85)을 ▲100대95(OECD 평균) ▲100대100(생산원가 고려) ▲100대120(사회적 비용 고려)으로 조정하는 옵션만 있고, 이 중 한 가지를 선택하도록 돼있다. 

 

국가기후환경회의는 해당 보고서를 포함해 관련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뒤 내달 말 경유·휘발유 등 자동차 연료 가격의 조정을 정부에 권고할 예정이다. 권고 자체는 법적 강제력이 없지만 국가기후환경회의가 대통령 직속 범국가기구인만큼 권고 내용 자체가 갖는 무게감을 무시할 수 없다.


이 같은 경유세 방안에 대해 전국화물연합회와 전국개별화물연합회, 전국용달화물연합회 등 화물자동차 운송업계를 대표하는 3연합회는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즉각 철회를 요구하는 의견서를 국가기후환경회의에 전달했다. 

 

3연합회는 “현재 위원회가 추진 중인 경유세 인상은 이미 실증 연구를 통해서도 미세먼지 저감효과가 미미하다는 결론이 나온 바 있다”며 “영세 화물차운송사업자와 운전자의 생계를 위협하는 증세 정책의 중단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여당에서도 관련 논의를 제기해 주목을 끈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은 지난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환경 피해나 교통 혼잡 등을 반영한 각 연료의 사회적 비용을 보면 경유가 가장 큰데, 세율은 경유보다 휘발유가 더 높다”며 “중장기적으로 수송용 에너지세율 조정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경유 1리터당 판매가격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53% 선이다. 9월말 현재 우리나라 자동차등록 대수는 2420만1392대 중 경유차는 998만 7325대다. 경유세 인상이 이뤄질 경우 1000만대에 가까운 경유차 차주들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경유세를 올려도 정작 기대만큼의 효과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실제 경유차 판매량과 경유 소비량은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지만, 미세먼지 배출량 자체는 지속해서 줄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1억84만6000배럴이던 국내 경유 판매량은 지난 2017년 1억3439만3000배럴로 33.3%가 늘었지만, 경유차의 미세먼지 배출량은 1만1988톤에서 8576톤으로 오히려 28.5%가 줄었다. 

 

또 2017년 조세재정연구원·환경정책평가연구원 등 4대 국책연구기관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OECD 평균 수준으로 경유세를 올리더라도 미세먼지의 예상 저감률은 0.2%대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결국 경유세를 올리면 미세먼지 배출량은 그대로인 상태에서 세금만 올라가게 돼 정책 목적 달성은커녕 소형 화물차를 운영하는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가 경유세 인상을 검토하지 않는다고 밝힌 배경도 경유세 인상에 따른 미세먼지 감축 효과가 현실적으로 크지 않고, 생계형 화물차를 운영하는 소상공인에게 부담을 줘 서민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물차운송업계와 경유차 운전자들은 “현 정부가 친환경 정책을 표방하고 있는데다 최근의 세수 부족을 경유세 인상으로 보전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화물차운송업계의 한 관계자는 “시민단체와 여당이 주장해 군불을 때우고, 대통령 직속 범국가기구인 국가기후환경회의가 정부에 권고하는 과정이 예사롭지 않다”며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되는 우리나라 정책 결정 구조상 경유세 인상은 의외로 간단하게 결정돼 추진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TAG

프로필이미지

이명철 기자 다른 기사 보기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장 많이 본 기사더보기
  1. 서울교통공사·한국철도공사, 창동차량기지서 열차 구원연결 합동훈련 실시 서울교통공사는 9일 창동차량기지에서 한국철도공사와 합동으로 열차 구원연결 훈련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직통운행에 관한 협약에 따라 1·3·4호선을 공동 운행하고 있는 양 공사는 열차 비상상황 발생 시 대응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구원연결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구원연결은 열차에 장애가 발생해 운행하지 못하게 ...
  2. 서울·경기 개인택시 면허 발급, 연장자 우선에서 추첨으로 바뀐다 서울, 경기 등 10개 지방자치단체에서 개인택시 운송사업 면허를 발급할 때, 동일한 경력일 경우 연장자를 우선으로 하던 규정이 폐지되고, 앞으로는 추첨 방식으로 결정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자치법규 개정을 13일 발표하며, 불합리한 진입 규제를 해소해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했다고 밝혔다. 기존에는 개인택시 ..
  3. "나도 모르게 사라지는 교통카드 충전금액"…'국민생각함'에서 개선방안 찾는다 국민권익위원회(위원장 유철환)가 교통카드 등 선불전자지급수단에 충전한 이용자의 선불금이 소멸하는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을 파악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진행한다.설문조사는 온라인 국민 소통창구인 「국민생각함」에서 오늘부터 21일까지 총 10일간 진행된다.전자금융거래 활성화로 '24년 상반기 기준 선불전자지급수단(페이, ...
  4. TS "자동차 긴급제동장치 맹신 위험…운전자 전방주시 필수" 한국교통안전공단(TS, 이사장 정용식)이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의 한계를 명확히 지적하며, 운전자들에게 ADAS 이용 시에도 전방주시 의무를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 14일 강조했다. TS는 자동차 전문 채널 오토뷰와 공동으로 진행한 긴급자동제동장치(AEBS) 작동 시험 결과를 이날 공개하며 이같이 밝혔다.AEBS는 차량 주행 중 전방 충돌 위험..
  5. 서울 버스노조 "통상임금 침해 말라"…26일 파업 출정식 예고 서울 시내버스 임단협 협상이 난항을 겪는 가운데 버스노조가 서울시와 사측의 통상임금 문제 제기를 교섭 파행의 원인으로 지목하며, 오는 26일 파업 출정식을 예고했다.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서울시버스노동조합은 14일 오전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앞 인도에서 '단체교섭 승리! 서울시 규탄 결의대회'를 열고, 서울시와 사용자 측...
  6. 부산 구·군 화물운수종사자 유류구매카드 발급 엄격해진다 화물자동차 유가보조금 관리 규정에 따른 유류구매카드 발급 승인 시 화물 단체가 발급하는 화물운송 종사자격증명을 확인한 후 발급하는 등 부산 구·군의 화물운수종사자 유류구매카드 발급이 엄격해진다.유류구매카드 발급 승인 시 화물운송 종사자격증명을 확인한 후 발급하게 되면 그동안 관련법상 의무화된 화물운전자 취업 관...
  7. “서부산권 산업단지에 중고차 대단지 조성을 위한 적정 규모 부지 제공 해야” 부산지역 자동차매매업계가 △대단위 중고차 매매단지 조성을 위한 부지 제공 △부산신항 배후 지역 중고차 수출 복합단지 조성 △온라인 경매사이트 플랫폼 개발·운영 홍보 등 중고차 산업 육성 지원을 요구하고 나섰다.부산시자동차매매조합은 19일 부산시청 7층 의전실에서 박형준 부산시장을 면담하고 이 같은 ‘정책 사업&rsqu...
  8. 서울시, 상암동 일대 '서울형 3D 자율주행 정밀도로지도' 시범 구축 서울시가 7월 말까지 마포구 상암동 자율주행 시범운행지구 20km 구간에 대해 3차원 디지털 기반의 '서울형 자율주행 정밀도로지도'를 시범 구축하고 민간에 개방한다.서울형 정밀도로지도는 서울시가 자체 개발한 디지털트윈 플랫폼 'S-map'을 기반으로 구축된다. S-map은 서울 전역을 3D 지도화한 스마트 도시 플랫폼으로, 도시행정...
  9. 대구 자동차정비업체 '경영난 위기'..."손해보면서 정비해야 하는 현실" [대구경북취재본부 서철석기자] 대구지역 자동차 정비업체들이 잇따른 경영난으로 붕괴 직전에 놓였다. 교통사고 감소로 인한 수리 물량 감소와 부품 및 재료비 상승이라는 이중고 속에, 손해보험사들의 일방적인 보험 정비 수가 삭감이 결정적인 타격을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비업계는 지속적으로 정비 요금 현실화를 요구하고 ...
  10. 어린이 교통사고, 5~6월 집중 발생… 오후 하원 시간대 ‘사고 최다’ 어린이 교통사고가 봄철인 5~6월과 하원·놀이 시간대인 오후 2시부터 7시 사이에 가장 많이 발생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현대해상 교통기후환경연구소는 12일, 2019년부터 2024년까지 현대해상 자동차보험에 접수된 보행자·자전거·개인형이동장치(PM) 대상 교통사고 약 17만 건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하며 이같이 밝혔다.분석 ..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