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서울경찰청 등과 협의체를 꾸려 내년 도심 마라톤 대회의 일정·코스를 검토하고, 주최 측에는 교통통제 협의 전 참가자 모집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마라톤은 지자체 허가 대상이 아니어서 시가 할 수 있는 건 '요청'까지다.
지난해 서울하프마라톤 참가자들이 광화문광장을 출발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서울시는 4일 이같은 계획을 발표하고 세부 내용은 12월 중 공고하겠다고 밝혔다. 교통통제 협의 전에 참가자부터 모집했다가 대회 직전 취소·변경해 참가자가 피해를 보는 사례가 생기고 있다는 게 시의 설명이다.
대회는 해마다 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는 142회로 전년(120회)보다 18.3% 늘었다.
시내버스 우회는 1년 새 두 배가 됐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서울시·서울경찰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마라톤·러닝대회 36개로 인한 시내버스 우회 노선은 누계 1437개였다. 전년(17개 대회·666개)보다 115.8%나 늘었다. 대회 하나에 40개 노선꼴로 길을 돌아간 셈이다. 올해도 10월 11일까지 1101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719개)보다 53.1% 많다.
운전대를 잡은 기사도 헷갈린다. 서울에서 15년 가까이 버스를 몰아온 기사 A씨는 "대회가 있는 날이면 타는 승객마다 바뀐 노선을 물어본다"며 "일일이 대답하다 보면 시간이 걸려 배차 시간을 맞추기 어려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나도 우회 노선이 바뀌어서 헷갈릴 때가 많다"고 털어놓았다.
민원도 따라 늘었다. 지난해 서울시에 접수된 마라톤·러닝대회 관련 민원 1012건 가운데 893건(88.2%)이 교통통제 민원이었다. 2024년 425건의 두 배를 넘는다. 통제는 도심에 몰렸다. 지난해 서울경찰청이 관리한 대회 28개 가운데 17개에 종로구, 14개에 중구 관할 경찰서가 투입됐다.
주민의 주말 장보기도 멀어졌다. 중구에서 20년 넘게 산 최모씨(50대)는 "주말에 마라톤 대회가 열리면 정신이 없다"며 "도로를 막으니 버스 타고 시장 가서 장 보고 오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부담도 크다"고 했다. 최씨는 "왜 서울 한복판에서 이렇게 대회를 계속 여는지 모르겠다"며 "도로 이용자들에게도 피해를 준다"고 지적했다.
서울 광화문 일대 도로를 시내버스와 택시 등 차량이 지나고 있다. 이 일대는 도심 마라톤 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차량 통행이 통제되는 구간이다. (교통일보) 도로를 막는 근거는 허가가 아닌 '후원'이다. 경찰 교통통제는 중앙정부 등 공공기관의 후원을 근거로 이뤄진다.
시는 올해 1월 '서울시 주최·후원 마라톤 대회 가이드라인'부터 내놨다. 출발 시간을 오전 8~9시에서 7시 30분 이전으로 앞당기고, 광화문광장 1만5000명·서울광장 1만2000명 등 장소별 참가 인원 상한을 정했다. 시 후원 대회는 지난해 15개에서 올해 7개로 줄였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은 시가 주최·후원하는 대회에만 적용된다.
이 문제는 지난달 1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다뤄졌다. 이상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서울시가 답한 내용에 따르면 같은 기간 중앙정부 후원 대회는 1개에서 21개로 늘었다. 올해 1~9월 열린 19개 대회 가운데 15개(78.9%)가 중앙부처 후원이었다.
시는 대회 허가권이 없고 교통통제 권한도 경찰에 있어 대회를 종합적으로 관리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이 의원은 "주최 측은 수익을 올리고 홍보도 하는데 시민들은 불편하고 경찰은 뒷감당을 다 해야 한다"며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제도는 내년 4월 바뀐다. 현행 국민체육진흥법은 1000명 이상이 모이는 체육행사 주최자에게 안전관리계획 수립 의무만 지운다. 지난 10월 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개정안은 내년 4월 21일부터 주최자가 안전관리계획을 지자체장에게 미리 통보하고, 지자체장이 보완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개정법도 대회 개최 여부를 지자체가 정하는 허가제는 아니다. 협의체 참여 기관과 검토 기준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조성호 서울시 관광체육국장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마라톤이 시민건강 증진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점에는 공감하지만, 최근 도심 마라톤으로 인한 일반 시민의 불편이 사회 문제화되고 있다"며 "대회 주최측의 자발적인 노력과 동참도 부탁드린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