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로공사가 관리하는 고속도로 터널은 1100곳이 넘는다. 이 가운데 터널이 지나는 땅의 주인에게 보상금을 준 곳은 한 곳뿐이다. 법은 27년 전부터 남의 땅 밑을 도로로 쓰면 소유자와 협의해 보상하도록 길을 열어뒀다.
유정훈 한국도로공사 사장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교통일보)
유정훈 한국도로공사 사장은 지난 8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터널 밑 땅을 지금도 소유자와 협의 없이 쓰고 있다고 시인했다. 같은 공사가 국유림 지하를 쓸 때는 사용료를 낸다. 국토위는 오는 23일 종합감사를 연다.
국감에서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1999년 이전에 준공된 고속도로 터널은 135개, 이후 준공된 터널은 민자도로를 빼고도 1000여 개다. 상부 토지 소유자에게 보상금을 준 사례는 2021년 세종~포천 고속도로 고덕터널(52억원)이 유일하다.
1999년 도로법 개정으로 도입된 '입체적 도로구역'은 땅을 통째로 사들이지 않고 지상이나 지하 일부만 도로구역으로 지정하는 제도다.
대신 도로관리청은 소유자와 구분지상권(땅의 위·아래 일정 공간만 쓰는 권리) 설정과 보상금을 협의해야 한다. 국토교통부는 2016년 지하 부분 보상기준도 마련했다. 땅 이용에 영향을 주는 깊이를 주택지 30m, 농지·임지 20m 등으로 정했다.
제도는 현장에서 거의 쓰이지 않았다. 2024년 5월 나온 '대심도 지하공간 사용권원 및 보상법제 연구' 보고서는 기존 관행과 보상 절차의 어려움 때문에 사유지 지하를 보상 없이 쓰는 터널 구간이 전국에 많다고 분석했다.
국가 땅이면 사정이 다르다. 국공유지에는 구분지상권을 설정할 수 없어, 도로를 내려면 사용허가를 받고 사용료를 내야 한다. 지하철도 다르다. 도시철도법은 타인 토지의 지하를 쓰면 토지 가격과 이용 방해 정도를 따져 보상하도록 정하고 있다.
법원 판단도 소유자 쪽에 무게를 둔다. 대법원은 남의 땅 지하에 권원 없이 시설을 설치한 경우, 소유자가 그 지하를 실제로 쓰려 했는지와 관계없이 사용료에 해당하는 부당이득을 인정해 왔다.
국감장 답변은 같은날 오전과 오후에 엇갈렸다. 오전 질의에서 김 의원이 터널 공사 전 소유자와 협의하느냐고 묻자, 정동섭 도로공사 관리본부장 직무대리는 구분지상권을 설정하려면 소유자 동의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소유자들이 땅을 팔 때 제약을 받는다는 이유로 구분지상권 설정을 꺼린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오후 감사가 재개되자 유 사장이 발언을 신청했다. 유 사장은 "터널 중간 지하 공간은 현재도 토지 소유자와 협의 없이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사가 필요한 터널 입구와 출구 부분만 협의했고, 그 사이 구간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설명이었다.
도로공사는 개선 의지를 밝혔다. 유 사장은 국민의 이익을 보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김 의원은 입법 개선을 검토하겠다며 도로공사의 참여를 요청했다.
김 의원은 "도로공사만 이익을 얻고, 소유권을 제한받는 국민은 적극적으로 요구하면 보상금을 받고 가만히 있으면 받지 못한다"며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오승안 기자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