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대리기사가 만취 승객에게 폭행당한 뒤 차량에 매달린 채 끌려가 숨진 사건을 계기로, 대리운전 노동의 안전 공백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개인의 일탈로 보일 수 있는 이 사건이, 실제로는 작업중지권조차 작동하지 않는 플랫폼 노동 구조의 취약성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리운전노조 관계자들이 대전 대리기사 사망 사고와 관련해 요구서를 들고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사건은 지난달 14일 새벽 대전 유성구에서 발생했다. 60대 대리기사는 30대 만취 승객 A씨에게 폭행을 당한 뒤 차량에 밀려 매달린 상태로 약 1.5㎞를 끌려갔다. 안전벨트에 얽힌 채 상체가 도로에 노출된 상태였고, 크게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당시 차량은 멈추지 않은 채 계속 주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전유성경찰서는 살인 및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운전자 폭행 혐의 등으로 A씨를 구속 송치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취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 이후 대리운전 현장의 안전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 대리운전노조는 지난 2일 대전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리기사가 폭언과 폭행, 생명 위협 속에서 일해 왔지만 이를 막아낼 제도적 장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대리기사는 고객 차량 안에서 늘 혼자 위험을 감당하는 구조에 놓여 있다”고 주장했다. 사고가 개인 간 우발적 범죄로만 치부되기 어려운 이유라는 설명이다.
쟁점은 위험한 상황에서 일을 중단할 수 있는 권리가 사실상 보장되지 않는 현실이다. 노조는 고객의 폭언이나 위협, 폭력 상황에서도 운행을 중단하면 플랫폼 측으로부터 배차 제한 등 불이익을 받는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배차 실적이 곧바로 수입과 연결되는 구조에서, 운행 중단은 곧 생계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위험을 인지하더라도 현장을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이 반복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제도적 지위의 모호함이 문제로 거론된다. 대리기사는 근로기준법이나 산업안전보건법의 보호를 받는 전형적인 근로자로 분류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감정노동자 보호 제도나 산업안전 체계, 작업중지권 같은 장치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각지대가 형성돼 있다는 것이 노조 측의 설명이다. 위험은 반복되지만, 이를 사전에 차단하거나 제도적으로 통제할 장치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대리운전 노동의 위험은 업무 구조 자체에 내재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부분 심야 시간대에 낯선 고객과 단둘이 차량에 탑승하는 방식이어서 위험 노출도가 높지만, 이런 특성은 별도의 안전 규정이나 보호 장치로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 호출·배차·평가를 플랫폼이 통제하는 구조에서 기사 개인이 위험 상황을 판단해 스스로 작업을 중단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노조의 설명이다. 위험 부담은 개인에게 남고, 통제 권한은 플랫폼에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또 다른 압박도 작동한다. 노조는 경찰과 사법당국이 “고객이 운전대를 잡게 하면 음주운전 방조가 될 수 있다”는 취지로 경고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한다. 폭력이나 위협 상황에서도 운행을 중단하기도, 고객에게 운전을 맡기기도 어려운 구조 속에서 대리기사가 사실상 선택지 없는 상황에 놓인다는 설명이다.
이번 사건은 개인 범죄의 잔혹성에만 초점이 맞춰질 사안이 아니라, 대리운전 노동이 어떤 조건에서 이뤄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도 읽힌다. 플랫폼을 매개로 한 업무 구조 속에서, 위험을 감지해도 스스로 작업을 중단하기 어려운 환경이 유지되고 있고, 그 부담은 기사 개인에게 집중되는 형태다. 노조는 이러한 구조가 반복적인 사고 위험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노조는 기자회견에서 플랫폼 기업에 대한 규제와 함께, 대리기사에게도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을 차별 없이 적용하고 작업중지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폭력과 위협이 일상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업무 특성상, 사후 처벌만으로는 현장의 위험을 줄이기 어렵고, 사전에 위험을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특히 고객과 단둘이 밀폐된 공간에서 근무하는 특성을 고려한 별도의 안전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요구도 함께 제기됐다.
차량에 매달린 채 숨진 대리기사의 죽음은, 단순한 강력 사건을 넘어 대리운전 노동이 놓인 안전 사각지대를 드러냈다. 위험한 상황에서 일을 멈출 권리조차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구조가 유지되는 한, 유사한 사고를 막기 어렵다는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병문 기자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