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취재본부 서철석 기자] 대구 지역의 수많은 사업용 차량 운전자들이 현행 고령 운전자 운전적성정밀검사 제도에 대해 강한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안전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개인의 이동권과 생존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 속에, 고령화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합리적인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대구 달서구 화물자동차 매매단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계없음)
특히 만 70세 이상 운전자에게 매년 의무적으로 부과되는 이 검사가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하며, 실질적인 교통안전 강화에 기여하기보다 운전자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매년 반복되는 검사, 운전자에게는 가혹한 현실
현행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만 65세부터 70세까지의 운전자는 3년에 한 번 운전적성정밀검사를 받지만, 70세가 넘으면 매년 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는 고령 운전자의 신체 및 인지 기능이 급격히 저하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다.
그러나 대구 지역의 사업용 차량(화물 법인, 개별 개인, 버스, 택시, 개인택시 등) 운전자들은 이 제도가 현실을 외면한 탁상행정이라고 주장한다.
운전적성정밀검사는 단순히 짧은 시간 안에 끝나는 절차가 아니다. 검사를 받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야 하며, 만약 부적합 판정을 받게 되면 재검사를 위해 또다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 운전을 생업으로 삼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검사 자체가 수입 감소로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부담은 더욱 커진다.
김모(73·대구 달성군) 씨는 "검사 한 번 보러 가려면 시간도 들고, 만약 부적합 판정을 받으면 다시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번거롭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획일적 검사 방식, 실질적 운전 능력 평가에 한계
더 큰 문제는 현재 운전적성정밀검사의 획일적인 검사 방식에 있다. 특히 치매 선별 검사와 같은 고령 운전자 대상 검사는 모든 고령 운전자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개인의 실제 운전 능력이나 인지 기능의 미묘한 차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고령 운수 종사자 적격검사 제도의 합격률이 99%에 달한다는 지적도 있어,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 씨는 "검사 결과가 실제 운전 능력이나 인지 기능의 미묘한 차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거나, 모든 고령 운전자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어 "단순히 검사에서 떨어지면 안 된다가 아니라, 개인의 신체적, 인지적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검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곧 단순히 나이를 기준으로 운전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운전 능력을 면밀히 평가할 수 있는 세분화된 검사 방식 도입의 필요성을 시사한다.
'낙인 효과'와 '심리적 부담'…생계까지 위협
잦은 검사는 운전자들에게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선 심리적 압박감과 사회적 낙인 효과로 작용한다. 수검자들은 매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검사가 '나이 때문에 운전하기 어렵다'는 사회적 낙인으로 느껴진다고 토로한다.
이러한 심리적 압박감은 특히 운전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에게는 더 큰 무게로 다가온다. 검사 결과에 따라 면허 유지 여부가 결정될 수 있다는 불안감은 운전자들의 정신 건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해외 사례에서 배우는 '균형점' 찾기
물론 이러한 운전적성정밀검사는 고령 운전자와 일반 시민 모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조치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제도의 효율성과 합리성을 높이기 위한 개선의 여지는 충분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해외 여러 국가들은 고령 운전자의 이동성과 교통안전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조화롭게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어 국내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주에서 면허 갱신 주기 단축과 의료 평가, 도로주행시험, 제한면허(조건부 면허) 제도를 운용한다. 캘리포니아주는 70세 이상 운전자를 대상으로 운전면허 재심사를 시행하며,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는 75세 이상 운전자에게 매년 운전 적합성 의료 평가 및 운전 실기 평가를 의무화한다.
뉴질랜드는 75세, 80세 이후 2년 주기로 면허를 갱신해야 하며, 이때 의사의 운전면허용 진단서가 필요하다. 특히 이들 국가들은 운전 능력에 따라 운전 허용 범위를 달리하는 '조건부 면허'를 발급하여, 야간 운전 제한, 특정 지역 운전 제한, 특정 차량 운전 제한 등 개인의 신체적, 인지적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운전 허용을 시행하고 있다.
일본은 첨단 안전장치(비상자동제동장치 등)가 탑재된 차량 운전에 한해 면허를 허용하는 '서포트카 한정 면허'를 신설하기도 했다.
이러한 해외 사례들은 단순히 고령이라는 이유만으로 운전을 일괄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운전 능력을 평가하고 그에 맞는 합리적인 제한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국내에서도 최근 국토교통부와 경찰청이 '고령 운전자 조건부 면허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가 논란이 일자 '고위험군 운전자에게만 적용한다'고 입장을 번복하는 등 고령 운전자 정책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미래를 위한 제언: 심층 평가와 유연한 제도 마련
현재의 운전적성정밀검사는 고령 운전자의 안전을 확보하려는 취지는 좋지만, 그 방식과 주기, 그리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운전자들의 부담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나이를 기준으로 매년 검사를 강제하기보다, 개인의 신체·인지 능력 변화를 보다 심층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실제 운전 상황을 반영한 시뮬레이션 평가 도입, 운전 빅데이터를 활용한 개인별 운전 습관 분석, 그리고 주기적인 의료 자문 및 상담을 통한 종합적인 운전 능력 평가 등이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다.
또한, 해외 사례처럼 개인의 운전 능력에 따라 운전 허용 범위를 제한하는 '조건부 면허' 제도의 적극적인 도입을 검토하여, 고령 운전자의 이동권을 보장하면서도 잠재적인 사고 위험을 최소화하는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안전은 절대 타협할 수 없는 가치이지만, 그 안전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삶과 생계가 위협받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대한민국이 직면한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고령 운전자 문제에 대한 합리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정부와 관련 기관은 운전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안전과 이동권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유연하고 실효적인 제도 개선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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