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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여록]’8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그 이후…
  • 이병문 기자
  • 등록 2022-09-02 09: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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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석준 대법관 후보자, 서울행정법원 재판장 당시 판결 논란

버스기사로 일하던 김학의 씨는 지난 2010년 10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요금 8800원 중 8000원만 회사에 납부하고 잔돈 400원을 두 차례 챙겨 총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였다. 전북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잔돈 관련 관행 등을 인정해 부당해고 판정을 내렸지만 회사는 소송을 제기했다. 


오석준 대법관 후보자는 2011년 12월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 재판장 당시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운전기사를 해임한 버스회사의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그리고 11년 후, 이 판결은 그의 국회 인사청문회장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으로 떠올랐다. 

당시 중노위 판정문을 보면 ▲현금 탑승 승객으로부터 받은 현금 요금 중 잔돈이어서 그 금액이 소액이라는 점 ▲시외버스에 CCTV가 설치돼 있음에도 현금 요금 중 잔돈을 회사에 납부하지 않은 것은 이를 묵인되는 관행으로 볼 여지가 있는 점 ▲운송수입금 잔돈 미납을 이유로 징계를 한 전례가 없는 점 등 종합적인 사정을 살펴 징계가 과다하다고 판단했다.

 

노동위원회와는 달리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 재판부는 800원 횡령이 ‘고의적’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버스요금 액수의 많고 적음을 불문하고 해임이 가능하다’는 노사 간 단체협약을 인용, 해고가 가능하다고 해석했다. 

 

노동계는 당시 재판부가 단체협약 내용 자체에만 집중해 ‘마지막 수단’인 해고를 쉽게 판단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단협 자체가 노조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구조로 출발해야 하는데, 단협 속 해고가 가능하다는 문구 하나만 가지고 해고를 너무 쉽게 해석했다는 것이다. 

 

당시 버스회사와 운전기사 김씨의 상황을 정리해보자. 김씨가 운전하는 시외버스는 정류소가 아닌 곳에서 현금으로 요금을 받지 않는데, 시골이라 정류소가 아닌 중간(간이 정류소)에서 타는 사람들이 많았다. 표를 끊지 않고 타면 4400원을 현금으로 내곤 했다. 그러면 지폐를 제외한 400원짜리 동전(잔돈)이 남는다. 

 

이를 놓고 노조에서도 계속 문제를 제기했다. 운전기사가 돈을 가지고 다니면 괜히 의심받고 문제가 생기니 현금통을 설치해달라는 요구도 했다. 운전기사들은 당시 현금을 받으면 현금 입금표를 제출하는데, 김씨는 동전을 제하고 4000원을 2번 제출했다. 김씨가 횡령했다고 하는 돈은 400원씩 2회, 800원이었으며 김씨는 이들 동전을 자판기 커피 뽑아먹는데 썼다.

 

김씨는 노조에서 파업을 했을 당시 중요 직책에 있었다. 노사 간 갈등이 없을 때는 별 문제없던 잔돈 관련 관행이 갈등이 있을 때는 해고라는 마지막 수단으로 사용됐다. 김씨는 징계전력도 없었다.

 

재판부는 이런 사정을 전혀 살피지 않고, 사측의 일방적 주장만 보고 회사측의 해고를 인정했다. 김씨는 소송비용도 없어 항소도 하지 않았으며 해고 이후 생활고를 겪어야 했다. 해고자로 낙인이 찍혀 10년간 직장을 구하지 못했고, 막일 등을 하며 힘들게 살아왔다.

 

김씨는 최근 한 방송 인터뷰에서 ”제가 그 400원 먹어서 부자 됐겠어요? 커피 한 잔씩 마셔도 된다고 해서 그거 마신 것뿐인데…“라며 ”고의로 해고될 것을 알면서 800원을 횡령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억울해했다.

 

그 당시 재판부는 윤석열 정부 첫 대법관 후보자인 오석준 후보자다. 오석준 대법관 후보자는 2011년 12월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 재판장 당시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운전기사를 해임한 버스회사의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그리고 11년 후, 이 판결은 그의 국회 인사청문회장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으로 떠올랐다. 

 

오 후보자는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800원 횡령 버스기사’ 판결에 대해 ”그 분(버스 기사)이 제 판결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수 있단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며 ”나름대로 가능한 범위에서 사정을 참작하려 했는데 미처 살피지 못한 부분이 있던 것 같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사실 오 후보자의 해명이 제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며 ”마음이 무겁다면서도 법리를 따지는 오 후보자의 태도가 자신에게 직접 사과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800원을 횡령한 버스기사를 해고한 사측의 처분이 정당하다고 내린 판결과는 달리 오 후보자는 2013년 2월 서울행정법원 제1부 재판장 당시 변호사에게 유흥 접대를 받은 검사가 낸 징계 취소 소송에서는 “처분이 지나치게 가혹하다”며 면직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이 검사는 불법 성매매 등이 이뤄지는 유흥주점에서 4차례에 걸쳐 술값 등 85만원 상당의 향응을 수수했다는 이유로 2012년 4월 면직 처분을 받았다.

 

이 판결은 800원 횡령 버스기사 판결과 너무 대비되는 것이다.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확정됐으며 검사는 면직 처분 취소 판결 후 최근까지 검사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단협 문구만 보고 판단한다면 차라리 컴퓨터가 재판을 하면 되지 않을까요? 문구만 보는게 아니라 여러 사정을 살펴보며 판결하라고 하는 게 법원에 판사가 있는 이유일텐데요.”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는 1일 오석준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심사경과보고서 채택 여부 논의를 연기했다. 인사청문특별위원회는 이날 오전 전체회의를 열고 오 후보자 임명동의안 심사경과보고서 채택의 건을 상정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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