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상 화주겸 알선업체 해당…하도급 수수료만 챙겨
<운송료·주선료 아무도 몰라 비자금 창구 의혹>
다단계와 지입제로 대표되는 화물자동차 운송시장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무엇보다 '대기업 물류자회사'가 끼치는 폐해를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대기업 물류자회사란 대기업 화주가 직접 설립한 물류기업으로, '화주-알선업체-운송사-운전자(차주)'로 이어지는 경로에서 화주의 운송물량을 통째로 받아 시장에 넘기는 역할을 한다. 사실상 알선업체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확보하고 있는 화물차는 거의 없고, 단지 모기업으로부터 서류상 수주받은 물량을 수수료만 받고 다시 또 다른 알선업체나 운송업체한테 하도급을 주고 있다.
대기업 기업집단 중 물류 자회사를 갖고 있지 않는 곳은 거의 없을 정도다. 삼성전자로지텍(삼성), 글로비스(현대차), 범한판토스(엘지), 롯데로지스틱스(롯데), 씨제이지엘에스(씨제이), 한 익스프레스(한화) 등 상당수 대기업 물류회사들은 화물차 운전자들이 생계문제를 고민하는 와중에 비교적 쉽게 흑자를 구가하고 있으며 금호아시아나, 동부, 에스티엑스, 동원 등 다른 대기업들도 물류사업을 그룹의 새로운 성장 엔진으로 삼고 있다.
위기감이 만연한 화물차 운송시장에서 대기업 물류자회사들은 왜 성장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화물차운송시장엔 전화 한통화로 운송수수료를 떼어먹는 불로소득자들이 많다”며 “그 꼭짓점에 대기업 물류자회사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대기업들이 물류자회사를 설립하기 시작한 것은 외환위기 이후다. 대기업들은 사내 물류담당부서를 분사했고, 화물차를 운전하던 근로자는 지입차주가 됐다.
그 이후에도 대기업들 사이에는 물류자회사 설립 바람이 불었다. 무엇보다 자체 운송물량이 있어 주선수수료를 남에게 주기가 아깝기 때문이다.
화주의 우월적 지위를 활용하면, 다단계 구조인 화물차운송시장에서 주선수수료는 매력적인 '불로소득'이 된다. 특히 화주의 운송료와 자신의 주선수수료를 숨길 경우 장부에 기록되지 않는 돈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대기업의 물류자회사는는 모기업의 물류업무를 대행하는 사실상 화주인 셈이다.
이 때문에 대기업 물류자회사를 비자금 창구라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적지않다. 실제로 대부분의 대기업 물류자회사는 화주운송료와 주선수수료가 비밀에 부쳐져 있으며, 일부 기업은 비자금 사건 때문에 곤혹을 치른 적도 있다.
현재 업계에 알려진 대기업 물류자회사 수는 30여곳이다. 하지만 실제 규모는 알기 어렵다. 페이퍼컴퍼니(서류상 존재하는 회사)도 일부 있으며 드러나지 않은 회사도 있다.
유럽과 미국 시장을 보면 대기업이 물류 자회사를 소유하고 있는 곳은 드물다.
이런 구조로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기 존재를 확보하는 외국의 물류회사에 견줘 경쟁력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등 물류 자회사한테도 장기적으로 좋지 않다는게 물류 전문가들의 우려다.
대기업들은 화물의 체계적인 관리를 이유로 물류 자회사를 두고 있지만 외국의 경우를 보듯 자회사를 두지 않고도 관리할 수 있다.
한 전문가는 "대부분의 화물 주인이 결국 대기업인만큼 대기업들과 직접 교섭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고 제도가 개선된다면 농산물 직거래처럼 운임을 올리지 않고도 리베이트를 줄여 화주나 화물운송노동자 모두 윈윈하는 협상을 할 수 있다"며 "알선료도 운임의 5% 정도로 상한제를 두는 것을 정부가 도입한다면 혼탁한 물류시장이 어느 정도 개선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