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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 정' 故 정세영 명예회장
  • 이병문 기자
  • 등록 2005-05-22 21:5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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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자동차의 대부 역사속으로
 
사람들은 아직도 그를 '포니 정'으로 기억하고 있다.
21일 타계한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인생 대부분은 오늘날의 현대자동차를 있게 한 한국 자동차산업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32년 동안의 자동차 외길 인생은 그의 삶이기보다는 한국 자동차산업의 산 역사였다.

정 명예회장과 현대차의 인연은 1967년 현대차를 설립할 때부터 시작된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1957년 현대건설에 입사해 일하던 고인은 1967년 시멘트공장 기계를 사기 위해 미국에 있던중 본사에서 포드자동차와 접촉하라는 연락을 받아 이를 성사시키면서 32년간의 자동차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현대차를 설립해 사장으로 취임한 정 명예회장은 이후 포니-엑셀 신화를 비롯한 한국 자동차산업의 역사를 만들어갔다.

현대차는 1968년 1호차인 '코티나'를 생산한데 이어 1974년에는 최초의 국산 고유모델인 '포니'를 개발했고 1976년에는 포니를 본격적으로 생산하면서 에콰도르에 수출해 국산차의 첫 수출이라는 기록과 함께 포니 신화를 이뤄냈다.

1984년에는 국내 최초로 자동차 종합 주행장을 준공했으며 1985년에는 현재 국내 승용차중 최장수 브랜드가 된 쏘나타를 탄생시켰다.

1986년에는 엑셀이 미국에 수출한 첫해 20여만대가 팔려 미국 10대 상품에 선정됐으며 1991년에는 국내 최초로 독자엔진과 트랜스미션을 개발해 외국기술에 의존하지 않는 현대차의 기술 독립을 알렸다.

이어 1997년 세계 최대의 상용차 공장인 전주공장을 건립하고 터키공장과 인도공장을 준공, 우물안에 있던 한국 자동차산업의 세계화를 이룩하는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같이 30여년간 현대차를 키워온 정 명예회장은 1999년 정주영 당시 현대 명예회장쪽과의 갑작스런 지분정리 과정에 따라 33년간 일해온 현대자동차를 떠나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으로 옮겼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정 명예회장을 불러 경영권을 정몽구 회장에게 넘겨줄 것을 얘기했고 정 명예회장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그는 현대차와 완전히 결별하게 됐다.

정 명예회장 입장에서는 자신이 32년간이나 키워온 '자식'이나 다름없는 현대차였지만 장자상속의 전통에 밀려 결국에는 현대차를 조카인 정몽구 회장에게 넘겨줄 수 밖에 없었던 셈이다.

정 명예회장은 당시 현대차를 떠나는 것에 대해 미련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큰 내색은 하지 않았다.

정 명예회장은 2000년 11월 출간한 회고록 '미래는 만드는 것이다'에서 99년 3월 현대차를 떠날 당시 정주영 명예회장이 "몽구가 장자인데 몽구에게 자동차를 넘겨주는 게 잘못됐어?"라고 반문하는 바람에 3일만에 아들인 정몽규 당시 현대차 부회장과 함께 자동차인생을 끝낼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 아쉬움이 있었음을 나타냈다.

그는 그러나 "큰 형님이 떠나라는 거북한 말을 하기 전에 미리 떠났어야 했고 그러지 못한 게 죄송스러웠다"면서 "큰 형님의 속뜻을 진작 헤아리지 못한 내가 송구스러웠다"고 심경을 밝혀 이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

그는 또 "이제 '포니'에서 내렸지만 기사(騎士)가 바뀌어 이제껏 보지 못했던 오류와 잘못을 고친다면 현대차는 더욱 훌륭한 준마로 커나갈 것"이라며 자신이 그토록 애착했던 현대차의 발전을 희망했다.

정 명예회장이 회고록에서 희망한대로 정몽구 회장 체제로 재편된 현대차는 정 명예회장이 이뤄놓은 발판에다 정몽구 회장의 리더십을 앞세워 승승장구, 오늘에 이르게 됐다.

정 명예회장은 현대차에서 떠나 현대산업개발을 맡으면서 현대차에 대한 미련이야 많았겠지만 이후 정주영 명예회장과 정몽헌 현대 회장 등이 별세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현대家 집안의 어른 역할을 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현대차, 현대중공업, 현대그룹 등 현대가 관계자는 이날 정 명예회장이 별세하자 '큰 어른'을 잃었다면서 깊은 애도를 표시했다.

*정세영 명예회장 약력= 1928년 강원도 통천에서 출생한 고인은 지난 2001년 3월에 돌아가신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셋째동생으로 슬하에 1남(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2녀(정숙영, 정유경)를 두었다.

1953년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후, 1957년 미국 마이애미대학(오하이오주)에서 정치외교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77년 한영 경제협력위원장, 87년 전경련 부회장, 88년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93년 고려대 교우회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98년 한미협회 회장을 맡은바 있다.

1983년 마이애미大에서 명예법학박사 96년 연세대, 97년 고려대에서 각각 명예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83년 영국 왕실로부터 명예 대영제국 훈장 '커맨더 장'을 수상했으며 1985년 금탑 산업훈장과 1987년 한국의 경영자상을 수상했다.

1999년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에 취임한 그는 건설인으로 제2의 인생을 열었다.

고인은 1999년 폐암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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