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이하 자배법)’ 하나를 놓고 세 명의 의원이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8일 한나라당 윤두환(울산 북구) 의원과 열린우리당 박상돈(충남 천안) 의원이 동시에 벌금과 과태료에만 차이를 둔 ‘자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는 올 1월 열린우리당 김동철(광주 광산구) 의원이 발의했던 자배법 일부수정안과 유사한 것으로 김동철 의원이 발의 8개월여 만에 국회에 상정된 데 이은 것으로 자배법 개정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이들이 발의한 자배법 개정안은 과태료와 벌금에 차이가 있을 뿐, 모두 교통사고로 인한 가짜 환자, 즉 ‘나이롱환자’ 의 외박·외출 등 기록 의무를 의료기관에게 강제하고 이를 손해보험사(이하 손보사)가 요청할 경우 제출할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의료계는 이 법안이 개정될 경우 의사의 진료권 침해 및 환자 개인정보 누출이 된다며 반대하고 있어, 갑자기 여러 의원이 해당 법 개정안을 동시에 발의한 배경에 손보사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김동철 의원이 해당 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은 올 초인데, 갑자기 다른 의원들이 갑자기, 그것도 연말에 법 개정안을 동시에 발의한 것은 손보사의 입김이 적잖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추측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나이롱환자를 실질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법안이 필요하다는 데 의료계도 일부 인정하고 있지만, 김동철 의원과 유사한 법안을 여러 의원이 동시에 발의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손보사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란 추측에 대해 법안을 발의한 해당 의원들은 “전혀 사실 무근”이라며 발끈, “이는 단지 선량한 대다수 보험가입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인식을 여러 의원들이 같이 하고 있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윤두환 의원 측은 “지난 8일 자배법 개정안을 발의하자, 손해보험협회 측 모 인사가 찾아오긴 했지만 대화할 필요성을 못 느껴 그냥 돌려보냈다”며 “손보사의 압력은 전혀 없었다”고 못 박았다.
윤 의원은 또한“현재 교통사고 나이롱환자로 인해 지출되는 보험비는 연간 3천억원에 육박하고 있다”며 “더 이상 선량한 보험가입자까지 이들로 인해 피해를 입지 않아야 한다는 의지에서 발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자배법 개정안에서 외출·외박 기록을 하지 않은 의료기관에 5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명시한 윤두환 의원 측은 “의사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여기서 말하는 진료기록은 단순히 외출외박 기록뿐”이라며 “의사들이 이것조차 지키지 않는다면 오히려 나이롱환자를 양산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에서 벌금 수위를 높였다”고 밝혔다.
박상돈 의원 또한 손보사의 입김이라는 추측에 대해 “이 같은 오해로 인해 대다수 국회의원들이 나이롱환자를 관리하는 법안 발의에 그동안 소극적으로 임할 수밖에 없었다”며 “이 법안의 발의 목적은 가짜 환자(나이롱환자)의 폐해로 인해 선량한 보험가입자들의 부담이 가중되는 것을 막기 위한 순수한 의도”라고 강조했다.
박 의원 측은 “손보사의 입장만 반영하는 것이 아닌, 의료계의 입장까지 반영해 향후 공청회 등을 통해 객관적인 입장에서 법안 개정을 공론화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올 초 해당 법안을 발의했던 김동철 의원 역시 “교통사고 피해자의 입원비율이 높은 것은 입원 또는 통원 여부에 따라 진료 및 보상에서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라며 “개정안은 입원 또는 통원 여부에 따라 진료와 보상에서 부당한 차별을 두지 않도록 명문화했다”며 보험가입자의 권익 보호를 강조했다.
한편 손보사 측도 “관련 법 개정을 위해서 손보사가 나서서 요구한 적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손보사 측에서는 나이롱환자를 법적으로 규제할 필요성을 항상 피부로 느끼고 있다”면서도 “일부 오해와는 달리, 손보사에서 국회에 물밑 작업을 한 적은 없다”고 못 박았다.
이 관계자는 특히 “해당 법안을 다루는 국회 건교위원회 역시 손보사와 의료계 양측의 의견을 취합하는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김동철 의원 발의 이후 각계의 의견을 담아낼 TF팀이 안 꾸려지는 등 입법화 분위기가 사그라지자, 일부 의원들이 법안을 발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지난 4∼6월 12개 손해보험사와 공동으로 전국 676개 병의원에 입원중인 교통사고 환자 3천59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병원의 허락 없이 무단 외출 또는 외박한 환자가 618명(17.2%)에 달했다. 지난해 10~12월 같은 조사에서도 부재율은 16.8%로 나타난 바 있다.
손보협회 관계자는 “교통사고 시 우리나라 보험환자 입원율은 평균 72%로 일본의 8배나 된다”며 “입원을 하더라도 성실하게 진료를 받기 보다는 통원 치료보다 많은 보상금을 노려, 집과 회사를 왔다 갔다 하는 소위 나이롱환자 수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손보협회 측은 “ 나이롱환자에 대한 처벌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예방차원에서 자배법 개정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손보업계는 물론 의료계도 나이롱환자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구체적인 제도개선 방향에 대해서는 좀처럼 합의하지 못하고 있어 이번에 3명의 의원이 발의함에 따라 자배법 개정안 추진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